재활의학과 의사로서 어떠한 행위에 치료라는 단어를 겁 없이 붙이는 것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사람으로 연극치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약 15년 전, 연극치료라는 것에 대하여 듣고 나서 연극치료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여름날, 박미리 교수께서 연극치료사 제자들을 미니버스에 한가득 태우고 짠하고 부산에 나타나 개원하고 있던 박인선 재활의학과의원에서 연극치료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몇 명의 환자들과 둥그렇게 둘러앉아 공이 없는 공 던지기 놀이를 같이 즐겁게 하고 있다거나, 가상의 무대에 올라가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무대에 있는 앉으면 웃게 되는 의자에 앉아 미친 듯이 웃다가 다시 일어선 후 두 손 모아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오는 광경을 환자들이 거부감 없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경이로웠다. 이렇게 나와 연극치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재활병원에서 연극치료는 기존의 재활치료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에 접근할 수 있고 실제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인지부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내심을 포함한 사회성, 마음속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수 있는 것 등에 대하여 연극치료가 재활치료를 받는 과정의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실제로 생생하게 경험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활치료 과정의 환자들에 대한 연극치료의 접근은 그리 수월하지는 않다. 환자들은 기존의 재활치료에 대한 관성이 워낙 높기 때문에 생소한 치료에 대하여는 일단 의심부터 하고 있고 거부하는 경향이 높다. 또한 병원에서 의료보험 이외의 치료비 지불에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지극히 예외적인 환자 이외에는 연극치료에 대하여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높다. 또한 재활병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재활치료의 스케줄이 빡빡한 편이므로 매일 매일 규칙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치료 스케줄에서 간혹 한 번씩 연극치료를 하기 위하여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활병원에서 연극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시행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한 여러 환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나가려고 한다. 1. 통곡하는 아주머니 매우 조용한 환자였다. 말도 조용조용, 얼굴표정과 헤어스타일도 항상 단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교통사고로 인하여 목을 다쳐 사지마비가 된 힘든 상태에서 그토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한다는 것이 미스테리였다. 하지 않겠다고 우기는 그 환자에게 연극치료를 해보라고 꼬시고 꼬셔서 하게 하였는데... 예상치 않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엄청난 통곡이 그치지 않았다. 멈추게 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하루 종일 내내 운 것 같다. 그토록 받아들이기 힘들어 피하고만 싶던 장애를 맞닥뜨렸을 때의 반응, 가족들에 대한 섭섭함,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 그리고 그 이후 연극치료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마음의 무시무시한 소용돌이 위에 조용하고 단정해 보이는 모습,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집으로 퇴원하여 현재는 외래를 통하여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친구가 없는 그녀에게 친구로서 다가갈 수 있는 연극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녀가 동의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남편과 아들, 또한 환자만큼 아파하고 있다, 어쩌면 더 아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들 가족에게 서로의 위로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면 연극치료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서투른 해결책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재활병원에서 장애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하고 멀쩡하였던 사람이 졸지에 하반신이 마비되고, 사지마비가 되고, 편마비가 나타나고, 말을 못하게 되고, 인지가 떨어져 바보가 되고, 걷지 못하고,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심지어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고... 이런 상태로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대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재활병원에서는 장애를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재활치료를 한다. 그러나 아프기 전의 상태로 온전하게 돌아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무리 재활치료를 하여도 남게 되는 장애에 대하여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 장애를 갖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장애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재활치료를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하고 불안한 확신(?)을 갖고 재활치료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세월이 몇 년 지나 체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해서야 항복할 때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가족의 희생, 경제적 손실을 보고 나서다. 더 이상 재활치료를 하여도 환자가 더 이상 좋아지지 않게 되는 시점을 장애가 고정되었다고 하고, 재활의학과 의사는 반드시 이 시점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환자가 겪게 될 장애에 대하여 설명하고 앞으로 사회에 돌아가서 살아가야할 문제들에 대하여 같이 의논하고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순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환자들이 싫어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때에 연극치료를 하면서 일부 환자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여는 것을 경험하였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매우 심하지만, 거부감이 심한 환자일수록 연극치료를 하면서 마음을 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자들 마다 다 다른 성격과, 장애에 대한 반응이 다르고 연극치료를 할 시점의 감정상태도 그때마다 변화하기 때문에 반드시 연극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의료진이 연극치료사에게 각각의 환자에 대한 되도록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2. 아프기 전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던 삐딱이 환자 아프기 전에도 살면서 불만이 많았던 환자는 아프고 나서 재활치료를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이 삐뚤어져 있었다. 그래서 삶이 너무 고달프고, 배우자는 떠나버리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세상은 원망 그 자체인데... 그것도 모자라 거기에다가 장애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별고 살고 싶지도 않는데 병원에서는 재활치료를 하라고 자꾸만 귀찮게 군다. 병원에서 도망가거나 포기 하고 싶은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그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귀찮고, 싫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도 꼴 보기 싫고, 그냥 병실 침대에서 하루 종일 누워있게 가만히 놔두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의 환자들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화내고, 같은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나 보호자들과 싸우고 심지어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병원에서는 말썽꾸러기로 낙인이 찍힌다. 하라는 재활치료는 하지도 않고 옆 사람과 싸우고 만만한 병실 간호사, 심지어는 치료를 해주는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에게 시비를 거니 좋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잘 오지도 않지만 간혹 나타나는 보호자와는 큰소리로 고래고래 싸우는 것이 일상이니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나타나면 병원 직원들은 긴장하고 지켜보아야 하였다. 외톨이. 그러면서도 외로워한다. 성격은 더럽지만 그래도 순수한 점이 간혹 보일 때가 있어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고 하면 또 지랄(?)을 한다. 이럴 때 연극치료가 정말로 제 몫을 했던 것은 기가 막힌다. 인간이 바뀌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야 말로 개과천선. 이러한 경우 장애는 크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살면서 성격의 문제가 몸의 장애보다는 더 큰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차라리 수월하였다. 연극치료를 하면서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믿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 이러한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게 되면 재활병원에서 연극치료를 왜 하지 않는 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지에 대하여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뇌손상으로 인한 인지기능을 가진 환자에게 어떠한 특정 약물을 투여하였을 때 바라던 인지기능이 회복되는 순간을 한번이라고 경험하였 다면, 그 의사는 그 약을 손에서 떼어낼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기분이다. 비록 다른 환자에서는 그 약물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하여도 그 약물의 가능성은 너무나 확실하게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3. 생각하지 못하였던 골절 환자들 산재사고로 다리 골절이나 신경손상이 없는 척추골절 환자들의 경우는 수술 후 관절이 굳어지거나 근육의 위축으로 움직임이 제한되거나 보행 장애가 있어 이것에 대한 물리치료 위주의 재활치료를 하게 된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재활병원에서는 워낙 장애가 심한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재활치료를 하여 장애가 없어질 이러한 환자들은 환자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연히 이런 경우의 환자들에 대하여 연극치료를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연극치료 시간이 비어있어 그냥 해본 것이었는데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 예상하는 것보다도 몸에 대하여 상당히 많이 걱정하고 있었고 직장 복귀에 대하여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뿔사! 우리는 이런 경우, 몸 상태의 의학적인 면에만 관심을 두었고 이 환자들이 회복하여 회사에 돌아가서 적응하는 것에 대하여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회사에 돌아가 겪게 될 불이익, 진급 문제 등의 걱정들이 숱하게 있었다. 한 번의 연극치료를 한 환자들 대부분이 연극치료를 더 받기를 원하고 있어 이러한 시도가 직장에 돌아가기 전의 환자, 특히 산재환자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4. 인지장애를 갖고 있는 뇌손상 환자들 인지장애의 정도나 종류에 따라서 너무나 다양한 환자들이 있게 된다. 그냥 보기에도 의식이 몽롱하거나 멍한 경우의 환자부터, 얼핏 보기에는 정상인처럼 멀쩡하게 보이나 몇 마디하게 되면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는 환자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한 환자 군이다. 물론 연극치료만으로 좋아진다고 말할 수 없다.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연극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재활치료에서 접근하지 않는, 못하는 다양한 부분에서의 인지적 자극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매우 어려운 숙제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이것을 과학적으로 꼭 증명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이 든다. 너무 책임 없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굿이라도 해서 환자가 좋아질 수만 있다고만 한다면 굿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고. 환자의 인지가 좋아질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하고 싶다. 그렇다면 연극치료가 환자의 인지의 회복에 분명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연극치료를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물론 여기에는 각각의 환자의 장애상태와 인지장애에 대한 의료진과의 충분한 교감과 정보공유가 되어야 환자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하고 치료방향과 방법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꼼꼼히 관찰되고 기록되어 각각의 증례가 모이게 되었을 때 어쩌면 더욱더 생생하게 뇌손상 환자에 대한 연극치료의 결과를 증명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은 그냥 하는 연극치료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미친 열정과 지독한 근성을 가진 의료진과 연극치료사의 만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라는 느낌도 든다. 글을 마치면서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에서 연극치료를 하였던 2-3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다양한 환자들의 연극치료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있어 일주일에 하루, 연극치료를 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진료도 하지 않고 연극치료를 하는 강당의 구석에 앉아 3달 동안 관찰하였다. 그러고 나서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환자들에게 연극치료를 계속 진행하였다. 그동안 환자들에게 연극치료를 하면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하였던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누가 연극치료를 하는가에 따라서 환자들의 반응은 기가 막히게 매우 달랐다. 또한 각각의 환자들에 대한 상황을 더 많이 파악하고 있을수록 치료에 도움이 되었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 연극치료를 하는 것으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모자랐던 아쉬움이 있다. 재활병원이라는 특이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연극치료사들이 마음껏 연극치료를 할 수 있는 미친 열정과 역할을 기대한다. *2017년 한국연극예술치료학회 제 11회 학술대회 '연극치료의 확장'의 원고입니다.